국기에 대한 맹세 (The Pledge of Allegiance)

국기에 대한 맹세는 서서 오른손을 가슴 위에 둔 채 암송한다. '신 아래 하나의 나라'란 구절은 1950년대에 첨가되었다.

 

국기에 대한 맹세의 역사를 논하기 전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먼저 살펴보자.

"나는 미합중국 국기와 그것이 상징하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우리는 신 아래 하나의 나라이며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이를 위한 자유와 정의의 나라입니다."

미 법전 4편 1조 4항에 의하면, "국기에 대한 맹세는 부동자세로 서서 국기를 향하고 오른손을 가슴위에 둔 채 암송해야 한다. 제복을 입고 있지 않았을 경우 남자는 모자를 벗어 오른손에 들고 왼쪽 어깨 쪽을 향하게 들고 있되 손은 가슴 위에 둔다. 제복을 입은 사람은 침묵을 유지하며 국기를 향하여 군대식 경례를 한다."라고 되어 있다.

 


다음은 가장 최초에 나온 국기에 대한 맹세의 원본이다.

"나는 미합중국 국기와 그것이 상징하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우리는 결코 나누어 질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이를 위한 자유와 정의의 나라입니다."

어떻게 '신 아래 하나의 나라'라는 구절이 삽입되게 되었을까? 여기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것처럼 이 서약은 놀랍게도 미국 독립선언서, 미합중국 헌법, 또는 심지어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그 누구와도 전혀 관계가 없다. 이 서약은 1892년 사회주의자이자 기독교인인 프랜시스 밸아미가 처음 작성했으며, 크리스토퍼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는 한 어린이 잡지에 실렸다.

 

흥미롭게도 한 시절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면서 국기를 향해 손을 뻗었던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팔을 뻗는 행동이 2차 대전 후에 나치즘과 파시즘을 대표하는 행동이 된 이후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동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른손을 가슴위에 얹은 자세를 유지한 것으로 통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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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는 로마 가톨릭교 그룹의 성공적인 로비로 인해 '신 아래'라는 구절이 국기에 대한 맹세에 공식적으로 포함되었다.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에 대해 감사를 표했지만, 만약에 그가 살아서 다른 종교단체와 비종교단체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는 반대 의견을 들었다면 이 결정을 재검토했을 것이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학생들이 국기에 대한 맹세를 있는 그대로 완전하게 암송해야만 한다고 중장하고 있다. 한편, 다른 사람들은 맹세하는 것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양측의 논의는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여호와의 증인은 맹세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맹세를 한다는 것이 이 종교가 금지하는 '숭배의 방식' 중 하나라고 믿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국장

국장은 국가의 수장과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물을 대상으로 치른다. 미국의 경우 현직 대통령에 의해 국가적인 인물로 간주된 모든 사람뿐만 아니라, 대통령 당선자와 전 현직 대통령이 모두 국장의 대상이다. 가끔은 군지휘자가 서거했을 경우 엄숙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탄약차(caisson)에 관을 싣고 워싱턴 D.C.에서 시가행진을 하기도 한다. 관이 실린 탄약차는 6마리의 같은 색 말이 끌며, 그 가운데 3마리에는 육군 친위대 병사가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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