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정장의 유래

신사정자과 관련된 관용적인 표현으로는  suit yourself (당신마음대로 하세요) 와 suit up(유니폼을 입으세요) 등이 있다. 하지만 일상 회화에서 등장하는 suit 는 명사로써 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 혹은 상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사정장을 뜻하는 슈트라는 단어는 '따르다'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동사인 쉬브르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동사는 한 벌이나 한 짝처럼 함께 사요하도록 되어 있는 품목들에 주로 사용된다.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겠지만, 오늘날의 신사정장은 중세시대 기사의 갑옷을 계승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의복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되기 때문에 의복 자체가 입는 사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언제나 한 벌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징적인 형태나 표식을 갖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1660년 왕정복고 시절 찰스 2세는 궁중 의복의 새로운 기준을 마련했다. 코트, 남성용 조끼, 그리고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를 모두 같은 소재로 통일한 것이다. 초기의 반바지는 프랑스풍의 풍성한 스타일이었는데, 1670년경에 이르러서는 몸에 잘 맞는 스타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을 창조할 수 있도록 만든 핵심적인 요소는 재봉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재봉기술을 13세기 후반 서유럽에서 도입되었다. 재봉기술은 새로운 스타일의 출현으로 인하여 더욱 다양하게 발달했고, 반드시 필요한 기술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편 새로운 신사정장은 승마, 사냥, 산책, 그리고 부동산 관리를 주로 하는 영국인들의 생활양식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영국의 '젠트리'라 불리는 지주계급들은 자신들의 생활양식에 맞춰서 신사정장을 변형시켰다. 먼저 승마에 적합하도록 자수가 놓인 실크보다는 견고한 무지 옷감을 사용한 옷을 선호했으며 정장 재킷의 앞부분을 짧게 만들었따. 이후 양복지는 더욱 극적인 변화의 시기를 거쳐 마침내 우리가 오늘날에 보는 것처럼 대체로 간소한 옷감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19세기 후반 조지 브라이언 브룸멜이 런던에 진출한 후에는 '부룸멜 스타일'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브룸멜은 후일 조지 4세가 되는 웨일즈의 왕자와도 친교를 맺는 등 사교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는 언제나 재단사에게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옷을 만들도록 했다. 브룸멜 자신은 귀족계급이 아니었지만, 차분한 색상과 정돈된 조합의 신사정장이 귀족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런 색상과 조합은 사람들을 실제보다 더 교양 있고 부유해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브룸멜 스타일은 영국 신사복의 전형이 되었다.

20세기까지 신사정장은 길이가 주로 무릎까지 오는 몸에 꼭 맞는 남성용 더블 상의인 프록 코트나 주간에 주로 입는 모닝 코트에 줄무늬 바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똑같은 소재를 사용한 코트와 바지를 한 벌로 입는 것은 시골뜨기나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하는 차림으로 여겨졌다. 이런 인식은 영국과 미국에서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신사복인 라운지 슈트, 혹은 비지니스 슈트가 일반화된 20세기에 들어서 변화되었다.

오늘날의 신사복은 깃의 넓이나 상의의 트임, 그리고 바지의 주름과 바지 끝의 접단을 어떤 스타일로 하느냐에 따라 다양해질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벌의 정장은 같은 소재로 재단한 상의와 하의로 구성된다는 개념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남성 정장은 20세기 중반 이후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턱시도

피에르 로릴라드는 영국에서 보통의 스타일에 비해 짧은 신사복 재킷을 구입했다. 그는 고향 뉴욕의 상류층 모임인 턱시도 파크에서 그 재킷을 선보였다. 얼마 후에 그의 친구들은 맨해튼에 있는 델모니코스에 그 재킷을 입고 가기로 했다. 그곳에서 누군가가 그들의 차림에서 대해 물었다. 그들은 "아, 턱시도에서 입은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턱시도의 유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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